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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막위에서 지어지는 꿈

오늘 날씨
경계가 희미한 구름들이 흐드러져있다. 그러나 태양의 고도가 바뀜에 따라 이내 곧 자취를 감추었다.
위치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
이번에 기항하며 마주한 곳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이다. 중동의 나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중동에 대한 나의 짧은 공부로 떠올려 볼 수 있는 이미지는단순히 낙타와 사막 그리고 아랍 사원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세계의 기네스북에 줄줄이 이름을 기록하는 건물들이 올라오는모습이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따라서 이번 아부다비는 건축기행이었다.
처음 마주한 건축물은 세계 3대 모스크 중 하나로 꼽히며 정식 명칭은 Sheikh Zayed Grand Mosque이나 편의상 그랜드 모스크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이다. 이 모스크는 이슬람의 화합을 위해 지어졌는데, 아랍에미리트에서 셰이크(Shiekh)는 최고의 통치자 또는 왕세자를 의미하고,이러한 셰이크는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각각의 부족을 다스린다. 이 그랜드 모스크는 아부다비에서 최고로 불리우는 셰이크의 이름인 Sheikh Zayed을 지니고 있다. 이 셰이크의 염원은 아부다비의 종교적인 중심 역할을 하며 평화로운 화합을 기원하는 것이라 한다.
이 사원을 처음 당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순백의 하얀색 건축물과 하늘보다 짙푸른 물,그리고 뜨거운 중동의 빛에 의해 산란되며 발하게 되는 눈부심에 압도당하게 된다. 규모자체도 4만여 명이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축구장 3~4개쯤은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이니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건축자재들도 세계 여러나라에서 최고급 대리석, 석재, 세라믹과 금 등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 정도 스케일이다 보니 모스크 건설에 38개국 3천여 관계자들이 관여했다고 한다.
좌우 대칭의 형태를 지니는 그랜드 모스크는 직육면체의 건물과 그 위에 돔이 올려져 있고 그 옆으로 회랑으로 이어주는 기둥과 첨탑이 세워져 있다. 특히 네 개의 첩탑은 모스크의 위치를 하늘에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자연스레 그 높은 첨탑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보다 눈이 부셔 시선이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면 모스크를 지탱하는 천여 개의 기둥이 발걸음을 인도해 준다.
그 발걸음에 따라 모스크의 회랑을 둘러보면 곳곳에 식물의 줄기와 꽃들이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인물이나 동식물들을 주제로 장식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굳이 카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일수록 회화와 조각의 단골 대상이 되는데 이들은 그것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둔다는 게 재밌었다. 이들에게 자연이란 그 스스로 이미 완전하므로 다시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식물이나 꽃의 경우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장식 주제인데,이 식물 장식으로 인해 하얀 대리석은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그 면적과 색상에 생명력을 부여받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신이 깃든 곳에 생명이 자라날 수 있다는 의미인걸까.
모스크 내부로 들어갈수록 유독 유려하면서 기하학적인 면들이 펼쳐진다. 그 흐름은 곧 우리를 혼미하게 하다가도 정돈된 대기의 무게로 인해 이내 곧 안정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딛고 있는 발밑의 카펫을 보게 되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음새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중앙 홀을 뒤덮은 카펫은 세계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는 카펫이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홀을 채울 크기인 만큼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와 무게이다. 그 품질도 최고급이어서 뉴질랜드산 고급 양모로 만들어지고 이란의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예술적인 카펫인 데다가,실제로 제작하기 위해 천명이 넘는 이란 여성들이 손수 2년 이상 제작했다고 하니 발을 좀 더 깨끗하게 씻고 왔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카펫을 거닐다 공중에 떠있는 빛을 바라보자면 또 놀라울만한 샹들리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수 만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제작한 샹들리에인데 크기만 해도 가로 세로 모두 10m가 넘으며 무게는 약 10톤에 이른다. 세상의 모든 크리스털이 여기에 다 있는 것 같다. 발현된 빛은 그 크리스탈 하나하나가 모두 머금고 천천히, 그리고 은은히 반사하면서 공간을 천천히 메우고 있었다.
해가 지게 되면 모스크의 아름다움은 조명과 함께 더욱 배가 되는데,마치 달의 궁전에 와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왜냐하면 이슬람에서 달이 신성시되는 만큼 달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게끔 조명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난 후 약 30분의 시간을 매직 아워라고 하는데 이 매직 아워의 시간에 모스크를 방문하면 아직 붉게 물들어 있는 하늘이 모스크를 분홍빛으로 만들고,이내 조명의 은은한 빛들로 인해 달의 궁전으로 변화해간다. 그 은은함은 정원의 물에 반사되며 그 환상적인 풍경을 극대화시킨다. 특히 모스크의 외벽에 잇는 청회색 빛 조명은 달의 형태에 따라 밝고 어두움을 강조하도록 되어있어 가장 하늘에 가까운 사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그랜드 모스크에서 신성성에 감탄하고 이동한 다음 장소는 일명 ‘행복 섬’이라 불리는 아부다비의 사디야트(Saadiyat)라는 섬인데,아부다비에서 500m 떨어진 섬으로 2018년 완공을 계획으로 하고 있는 문화예술과 관광을 위한 코스이다. 경제특구인 두바이에 부족한 문화적 요소를 특성화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에서 특히나 신경을 쓰고 있는 섬이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건축물들이 올라가고 있는데, 아직 그 건물들이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그 밑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충격을 주는 곳이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중동이지만 여행책자에 나오는 것처럼 마치 지중해와 같이 푸른 바다와 휴양코스를 끼고 있는데,중동이 가질 수 있는 지역과 기후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에 대해 도전하는 곳이었다.
사디야트섬에 있는 전시관에서는 그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2018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체 조감도만 봤을 때는 큰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건물 하나하나를 살펴보게 되면 놀라운 건축물들이 주게 될 새로운 경험들을 상상하게 된다.
먼저 2016년 오픈 예정인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의 해외 첫 분관이다.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하였는데, 프랑스를 대표하는 빛의 건축가 장 누벨의 명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디자인 때문에 누구나 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건물이다.
아부다비는 ‘루브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 무려 약 5500억을 지불해야 했고,루브르 박물관의 작품들을 30년간 전시하는 조건으로 약 1조 3500억 원을 치러야 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자국의 문화적 자부심과 영혼을 파는 행위라 여겨 반대 여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강한 중동의 자본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유럽이 간직하고 있던 문화예술적 가치마저 대여할 수 있으니,세계 시장에서 경제력의 힘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 반구형의 건축물은 마치 우주선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이는데,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빛이 부서지면서 만들어내는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하니 가히 거장의 상상력이 느껴진다. 박물관 천장이 마치 나무줄기들이 엉켜있는 듯이 이어져 있어 뜨거운 중동의 햇빛은 그 줄기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부서지고 다시 합쳐지며박물관 내부에 빛의 파편으로 박히게 된다. 빛의 소나기를 맞으며 걷게 되는 것이다. 이 환상적인 빛의 마법을 위해 지름 180m의 천장에 올려진 철만 해도 7000톤이라고 하는데 이 무게는 에펠탑에 쓰인 철재 무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건물 내부에서는 빛의 소나기를 맞으며 걸을 수 있다.이건 영화 속 장면이라기보다는 마치 미술관 내 작품들을 보기 전 명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의식이 될 듯하다.
다음 건축물은 UAE의 상징 동물인 매의 날개를 형상화해서 만든 Zayed National Museum. 자이드 국립 미술관이다. 매는 UAE의 강력한 상징이자 그들의 문화유산과 삶의 방식의 중요한 동물이라고 한다. 매의 날개를 형상화했다고 하나 바닷가에 있는 박물관인만큼 그 모양이 마치 파도의 이미지를 그대로 얼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또 이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마치 이 섬 전체를 울려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건축물이었다.
그다음으로 가장 충격적인 건축물은 바로 아래 구겐하임 뮤지엄이었다. 마치 건축가나 화가가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재미있게 쌓아놓은 것만 같은 저런 자유분방한 형태가 거대한 건축물로 형상화된다는 것이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이 건축물의 모형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입구로 들어가고 나면 어디로 나오게 될지 모르는 마치 호그와트의 성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이동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기적인 연결이 기대되는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분방한 형태마저 자연스럽게 위치할 수 있게 되는 중동의 지리적인 맥락과 환경이 놀랍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느 장소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박물관이 어울리는 맥락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중동은 우리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는 단지 위험한 나라,종교적 특색이 강해 배타적일 것이라 생각되는 곳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도전되기 어려운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었다. 앞으로 20대인 나에게 지금의 중국만큼이나 커다란 태풍으로 접하게 될 곳이 중동이라는 생각이 드니 긴장감이 더해진다. 가장 치열한 감각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있을 이 20대의 시기에 다행히 더 늦지 않게 새로운 세상의 살결을 본 것만 같아 나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 앞으로 내가 꿈을 위해 항해하게 될 세계 속에서 중동은 과연 어떤 파도로 또다시 다가오게 될까. 분명한 것은 지금 만난 이 물결과 미래의 파도는 분명 나의 항해지도에 중요하게 기록될 거라는 것이다.